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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인 중의 한 명입니다. 엄홍길은 히말라야라는 영화를 통하여 세대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엄홍길은 산악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비판과 의혹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엄홍길 프로필

엄홍길 나이는 1960년 9월 14일생입니다. 엄홍길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이며, 학력은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합니다. 엄홍길은 1985년 9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 실패를 시작으로 2001년 9월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2004년 5월 5일 위성봉 얄룽캉 등정에 성공을 하면서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을 합니다.



엄홍길은 집안의 반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악인으로 도전을 이어갔는데요. 히말라야에 갈 때마다 어머니의 걱정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제가 히말라야에 가면 어머니는 거의 절에서 살다시피 하세요. 그러면서 어머니는 이놈아 집안의 장남이 이래서 되겠냐.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느냐라고 반대를 했지만 아버님과 저 중간에서 중재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버님 몰래 좀 주시기도 하셨고요>



엄홍길 박무택 진실

히말라야를 통하여 엄홍길의 휴먼원정대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엄홍길과 박무택은 칸첸중가를 오르던 중 비바크를 시독하게 되는데요. 비바크란 산에서 텐트없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밤을 지새우는 일인데요. 텐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경우에 사용을 합니다.



안나푸르나를 등정할 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2명의 세르파를 구하려다가 발목에 로프가 감겼고, 뼈가 뒤틀어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추락하던 셰르파들은 무사했지만 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사고난 지점은 해발 7600미터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부상자를 쉽게 도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엄홍길은 오직 앞꿈치와 두팔로 기고 온몸으로 구르면서 6일만에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엄홍길은 당시 다리 부상을 계기로 엄청난 노력과 재활 훈련에 들어갔고, 재기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2007년 5월 31일 14좌 등정, 16좌 완등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엄홍길은 2005년 우리나라 산악계에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박무택, 백준호, 장민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사망을 했던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엄홍길은 15좌 얄룽캉에 등정하기 위하여 준비중에 후배들의 조난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박무택은 8750미터에서 자외선의 반사 때문에 일어나는 눈의 염증 설맹에 걸려 주저앉게 되었고, 후배 장민을 산에서 먼저 내려보냈는데, 장민은 실종을 당하게 되지요.


엄홍길은 휴먼원정대를 꾸려서 이들의 시신을 국내로 송치하려고 시도를 하는데요. 이것이 영화 히말라야의 실제 스토리입니다. 휴먼원정대는 박무택의 시신을 찾는데 성공을 했지만, 산 아래로 도저히 옮기 여건이 되지 못했고 결국 히말라야 산 중턱에 돌무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초모랑마의 턱밑 8,750m 지점 절벽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꽁꽁 얼어붙은 무택이를 발견했다. 당시 눈보라 때문에 도저히 시신을 운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택이를 돌무덤에 안장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렇게 무섭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싹 그치고 봄 날씨처럼 바뀌어이제야 무택이가 한을 풀고 편히 가는구나 싶었다>


엄홍길의 히말라야 16좌 성공에 대한 비판도 많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한국 산악계의 업적주의 때문입니다. 최근 히말라야는 일반 등산보다는 조금 더 힘들 정도로 히말라야 등반을 할 수 있는 코스도 많이 있기 때문이 이런 곳을 많이 등반했다는 업적주의가 보기에 좋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홍길이 산에 대한 사랑과 초심, 산을 오르면서 맞닦뜨린 수많은 위험과 이를 극복한 지헤는 분명 존경받아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 14좌라는 말을 모를 때부터 그는 산에 미쳐서 산을 온전히 오르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눈앞에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 닥쳐도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더군요. 시간은 흘러가니까요> <실패를 하게 되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앞으로 내가 더 큰 시련을 겪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이정도는 내가 감수할 수 있다고요>



엄홍길이 국내 산악인으로 인정 받고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실패를 했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도전정신, 실패를 해도 그것이 실패라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 그것이 지금의 엄홍길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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